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교/타 종교 간의 관계 (문단 편집) == [[신토]] == [[일본]]의 경우 [[아스카 시대]]에선 [[신토]]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전쟁을 해왔다. 실제로 불교가 처음 일본으로 도입될 당시 위에서 나온 대로 귀족 정치전쟁과 맞물려 친불교파인 [[소가]]씨와 반불파인 모노노베씨 간에 엄청난 전쟁들이 많이 시작된 데다, 현세구복을 중요시하던 토속신앙인 [[신토]]와 보다 고급 철학에다가 수입품이라는 이점까지 지닌 불교 간에 이권 다툼(?)형 전쟁들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모노노베씨와 신토가 소가씨/불교 세력에 밀려나 버리고 만다. 소가씨는 왕실의 외척으로서 힘을 행사했고, [[스이코 덴노]]와 [[쇼토쿠 태자]] 이후 불교는 적극적으로 유입되어 일본에 자리잡게 된다. 다만 [[소가]]씨가 [[도래인]]을 자청한 가문이고 [[백제]]와 가까웠다는 것을 생각할 때, 토착종교를 믿던 토착민과 외래종교를 신봉한 도래인의 알력다툼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정체성과 종교 문제가 겹치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매우 많다. 왜냐하면 민족이 곧 해당 신앙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 실제로 [[아스카 시대]] 때 불교에 심취한 왕들은 [[백제]]를 비롯한 [[중국]], [[한반도]]같은 외국과 가까운 자들이 많았으며, 시대가 흐르고 불교가 토착화되면서 그와 별도로 자리잡힌다. 후에 [[헤이안 시대]] 진언종과 천태밀교 등 밀교가 본격적으로 수입되자 [[신토]]의 신과 불교의 신들을 동일하게 여기며 불보살이 일본의 신의 모습으로 불교전래 이전에 이미 와 있었다는 소위 본지수적설에 입각하여 [[신토]]와 불교가 결합하고, 더 나아가 기존 신토의 신들을 모두 불교의 [[부처님]]/[[보살]]의 화신([[아바타]])로 격하시키고, 나중에는 아예 전원 신중으로까지 눌러댔다. 심지어 [[아마테라스]]의 경우 [[관음보살]]의 협시신중인 우보동자라는 작은 신으로 격하되는 시기를 겪을 정도. 이러한 신불습합, 본지수적을 피한 것은 자체적인 신토 철학을 만들고 경제적 기반을 가진 이세신궁 정도이며, 대부분의 신사와 절이 합쳐져 절의 승려들이 대를 이어 신사의 신관이 되는 일이 빈번했다. 이후 [[신토]]는 지속적으로 불교의 위세 앞에서 큰 힘을 내지 못했다. [[에도 막부]] 중기에 민간의 [[아마테라스]]에게 복을 비는 관습이 등장해 사정이 나아진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의 기복신앙은 대단해서, [[아마테라스]]에게 복을 비는 순례 시 봉건질서를 무시하는 행위를 민중들이 저질러도 막부에서 어지간하면 눈 감고 넘어갈 정도였다. 이런 시절에도 일본 정토진종의 [[승려]]들은 민중들의 신사 참배를 제지하는 행위를 하다 문제가 생겼을 정도.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신토가 불교를 누른 것은 [[에도 시대]] 말~[[메이지 유신]] 초기를 거치면서 일본 철학계에서 자체적으로 불교에 대한 검증과 비판이 일어나고, 그 결과물은 바로 '''[[국가신토]]'''.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는 오히려 불교를 억누르고 [[신토]]를 분리시키려 하기도 했다지만,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정책이 바로 [[승려]]에 대한 도성 개방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국가신토는 [[일본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침략의 도구로서 줄창 이용되어 온 끝에 전쟁 패망 이후 정상적인 [[신토]]로 돌아가게 되고, 불교는 불교대로 평범한 관계로 돌아오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